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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패션

지퍼, 산업시대 혁신 발명품에서 스트리트웨어까지

지퍼의 발명과 초창기 사용

지퍼(Zipper)는 단추나 끈보다 빠르고 간편하게 여밈을 고정할 수 있는 장치로, 19세기 말 미국에서 처음 특허를 받았다. 1893년 휘트컴 저드슨이 고안한 ‘클래스프 로커(Classifier Locker)’가 지퍼의 전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초기에는 구조가 복잡하고 내구성이 떨어져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실용화된 것은 1910년대 기드온 선드백이 개량한 ‘세퍼러블 패스너(Separating Fastener)’ 덕분이었다. 금속 이빨을 맞물리게 하고 슬라이드를 움직여 여닫는 방식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지퍼의 기본 구조가 되었다.

군복과 작업복에서의 확산

지퍼는 처음에는 군수용과 작업복에서 빠르게 퍼졌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군복, 비행복, 전투화 등에 지퍼가 적용되었고, 이는 기능성과 속도의 장점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단추보다 빠르게 채울 수 있다는 점은 전장과 작업 현장에서 큰 장점이었다. 1920~30년대에는 아동복과 신발에도 지퍼가 쓰이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장식보다는 ‘혁신적이고 편리한 발명품’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패션 산업 속 지퍼의 자리

1930년대 이후 지퍼는 본격적으로 패션 산업에 들어왔다. 프랑스 디자이너 엘자 스키아파렐리가 드레스에 지퍼를 과감히 노출시키며 장식적 요소로 활용했고, 이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이후 남성용 바지의 여밈, 여성 드레스의 뒤 여밈, 아우터의 전면 여밈 등에 지퍼가 도입되며 일상적 디테일로 정착했다. 1950년대에는 지퍼가 표준화된 규격으로 대량생산되며 전 세계 의복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서브컬처와 지퍼의 반항적 이미지

지퍼는 단순한 편리함을 넘어 반항과 자유의 상징으로도 읽혔다. 라이더 재킷과 바이커 부츠에 달린 메탈 지퍼는 1950~60년대 청년문화에서 거칠고 반항적인 이미지를 대표했다. 펑크와 록 문화에서는 옷 전체에 지퍼를 과도하게 배치하거나 장식으로 노출하며 기성 질서에 대한 도전 의식을 표현했다. 지퍼는 더 이상 숨겨진 부품이 아니라, 시선을 끄는 장식적 장치로 진화했다.

현대 스트리트웨어와 지퍼의 변주

지퍼

오늘날 지퍼는 스트리트웨어와 하이패션에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오버사이즈 후디, 테크웨어 팬츠, 기능성 아우터에는 지퍼가 단순한 여밈을 넘어 스타일링 포인트로 작용한다. 비대칭 지퍼, 이중 지퍼, 컬러풀 지퍼 같은 디테일은 기본적인 옷을 실험적 디자인으로 바꿔 놓는다. 또한 스포츠 브랜드는 통기성과 기능성을 강조하기 위해 환기용 지퍼, 포켓 지퍼를 적극 활용한다. 지퍼는 편리성과 시각적 재미를 동시에 제공하는 디테일로 자리매김했다.

기술 발전과 지속가능성

지퍼 역시 시대의 변화에 따라 기술이 진보하고 있다.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플라스틱 등 다양한 소재가 사용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친환경 리사이클 플라스틱 지퍼도 개발되고 있다. 방수 지퍼, 방열 지퍼 같은 기능성 제품은 아웃도어와 스포츠웨어에서 필수 요소가 되었다. 지퍼의 내구성과 재활용 가능성을 높이려는 시도는 패션 산업의 지속가능성과 맞물려 있다.